십자가의 도를 본 받음은 죽는 것 같으나 다시 사는 길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3)(롬7:19-25)


 

사람이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면,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능력은 주셨지만, 말씀을 주시지 않아서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과 같이 분별력이 없다. 사람이 분별하는 능력은 무엇인가?


첫 사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선악을 아는 자가 된 것이다.(창3:5,22) 이 선악과는 교리 상에서 말하는 자연계의 식물에서 열리는 과실이 아니라, 선악을 아는 인격자로 지음을 받은 첫 사람 아담의 내성 인격 곧 율법을 말한다. 율법의 말씀은 육신적 세상에 속한 말씀으로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세상을 다스리며 질서를 유지하며 상선벌악 하는 사망의 법으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것이다.(창1:28)(롬2:15)


사망의 법의 주인공 첫 사람 아담 아래서 태어나는 모든 인생들은 모두가 율법의 말씀을 받아 태어나고 세상의 복을 받으며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율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롬(7:7)에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 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사람의 분별은 율법에 기인하고, 그 능력은 사망의 세력이다. 율법은 육신과 하나가 되어 죄를 낳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과 소욕은 사망이 되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8:7)

 

하나님 나라에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율법이다. 우리들이 저야 할 십자가는 내 안에 들보 곧 율법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소욕이다.


그러나 율법 안에서의 영의 실체는 선과 악으로 되어 있어서, 선을 따르고자 해도 악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에  결국은 악한 법이 된다. 우리들의 연약함이 여기에 있다. 이 사망의 법을 이길 힘이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윤리 도덕적으로 의인이라 칭하는 자들은 악 보다도 선한 마음이 좀더 많은 것뿐이고, 결국에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죄라는 것은 열번을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라도 곤고(困苦)한 자신을 바로 알고--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 와야 한다.(죄 가운데 갇혀 있는 자신을 보라)


바울 사도의 믿음은 갈(2:19)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바울은 율법 안에서는 죄의 결과밖에는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를 본 받는 믿음 안에서 율법을 향하여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는 죽는 것 같으나 다시 사는 길임을, 십자가의 도안에서 주시는 교훈이다. 


예수 안에 부름을 받은 자들이 신앙 생활 가운데서 어느 정도 경건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는 겉(외적)은 어느 정도 거룩해질지 모르나, 안(속 사람)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안을 깨끗케 하는 길은 예수님 곧 약속하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여 순종하는 것뿐이다.


사람의 인격 곧 율법으로 말미암는 선악의 분별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안에서의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자! 아무리 믿음이 있는 자라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육신의 소욕에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법 곧 십자가의 도를 따르기를 원하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기를 좋아하니, 두 법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서, 마음속에는 항상 두 마음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곧 22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내 마음의 법)을 즐거워하되" 이고,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곧 23절에 “내 지체 속에 있는 한 다른 법(죄의 법)”이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서 우리들의 원함보다는 원치 않는 악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들을 보게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지금껏 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겼던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은 율법 아래 갇혀 있어서, 선악 가운데서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죄 아래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말미암는 깨달음은  율법 안에서의 것이기에 결코 죄 아래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온전히 죄 가운데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도를 본 받아 믿는 믿음에 있다.(갈2:19-20)


십자가의 도안에서--사람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보혈의 피 공로에 대해서--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밝혀 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나를 구원하시는 그 큰사랑에 만만 감사를 하게 된다.(요16:7-8)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나,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