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9:8-10)

 

(9:6)...첫 장막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고, (9:7)...둘째 장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고 이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섬기는 예를 행했는데, 이는 예수를 믿는 오늘날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 첫 장막(율법 아래)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십자가의 도)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제 십자가의 도안에서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첫 장막(율법을 비유)에 있을 동안에는 성소(진리를 비유)에 들어갈 길을 나타내 주시지도 않았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이는 율법의 믿음 아래서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율법 아래서는 천국에 들어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의식적인 보이는 율법의 윤리 도덕적인 일로 분주하지만, 진리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역사로서 본질이 다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개혁을 외쳐 왔지만, 달라진 것은 육적 물적 부흥뿐이고, 내적 심령 부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입으로는 예수를 믿고 부르나 마음은 율법 아래 매여 세상의 것들과 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4)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

율법 아래서의 믿음은 육체의 예법만 나타나는 율법의 의를 이루지만, 영혼이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예수를 믿어도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15171031일은 루터의 종교개혁일로서 500주년 되어 기념예배를 드린다고들 하는데

500년 동안에 무슨 개혁을 이루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물질적인 세상의 보이는 것들에는 많이 아름다워지고 거룩하게 보이는 부흥을 이루어 왔지만, 실상 믿는 자들의 마음에 거룩함은 이루어지지 않고 갈수록 교회는 부패 타락 변질되어 가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개혁을 외치고 오늘에 이른 기독교가 진리이신 예수는 말뿐이고, 예수와는 상관없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고 또한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증거하시기를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4:2)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직이 아래 있나니

유업을 이을 자 곧 구원을 받을 자라도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하나님의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서 양육을 받고 종노릇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구원의 섭리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어 이천년 전에 예수를 보내 주셨고, 또한 예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어 우리들의 믿음이 율법의 종에서 진리의 아들로 택하시는 것이 십자가의 도안에서 밝혀지는 비밀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따라서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직 율법의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기독교가 부패 타락 변질되고 바벨화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 주신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자신의 마음에 영접하여 계시의 믿음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심령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율법 아래 매여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새 언약인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 아래 맡겨두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야할 때입니다. 자신의 심령에 천국을 이루는 천국복음은 오직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뿐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도안에서...자신의 내적인 심령 개혁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