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1:5-13)

 

빛과 어두움은 육적으로는 낮과 밤을, 영적으로는 진리와 율법을 비유한 말씀이다. 빛의 중요성은 이 세상 피조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간이 된다. 빛이 없다면 이 세상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12: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하셨고, (1: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이는 세상 빛을 말함이 아니고, 영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말씀한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율법의 이 세상 어두움 가운데 오셨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진리를 깨달아 알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모세의 율법 아래 있던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메시야를 고대했는데, 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율법의 어두움 가운데서는 진리의 빛을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하나님의 경륜 섭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율법의 아담 안에서 태어남으로 본질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거하게 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8:44)나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하셨고,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누구든지 처음에는 다 마귀의 자식 곧 어두움의 자식인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음은 아담의 율법 아래 있는 것이고, 율법 아래서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에게 예수의 빛의 복음을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있어 먼저 율법의 어두움에 대해서 분별하지 못하게 되면, 빛이 되시는 예수에 대해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두움이 스스로 빛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빛이 되시는 예수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 스스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빛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를 이 어두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부르시고 택하심이 있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증거하기를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하셨고, (고후 3:15-16)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율법)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진리)로 돌아가면 그 수건(율법)이 벗어지리라

어두움이 눈을 멀게 함은 마음을 어둡게 함이고,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함은 율법의 말씀은 빛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의 교훈 아레 있게 되면 더욱 마음의 눈은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곧 빛이 되시는 예수에게로 돌아가면 마음에 어두움은 물러가고 빛이신 예수를 만나게 된다.

물질 세상의 태양 빛도 이 세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근원이듯이, 영혼이 영생에 이르는 영원한 빛이 되시는 예수의 이름(십자가의 도)은 영생의 근원인 것이다. 영원한 빙이 되시는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여 진리의 아들의 축복을 받기를 바라며...

빛과 어두움을 분별함은 진리와 율법을 분별함이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과 진리, 어두움과 빛을 분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