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23:37-39)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세상은 싫어한다. 그 원인은 이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했고(요일5:18), 이 세상의 모든 행사가 악하기 때문 이다.(7:7)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스데반)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왜 옳은 길을 싫어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길은 사는 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지자를 죽이고 또한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역사는 오늘날에도 재연되고 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자리에서 함께 했던 사울(7:57), 다메섹에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러 앞장섰던 사울은(9:2) 여호와를 열심히 섬겼던 자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가 아닌가?(3:6)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는 바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또한 들어가리라 하셨는데, 율법의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를 알 수 없고, 또한 율법 안에서 거듭나려 하기 때문에 진리로 거듭나지 못하는 것이다.

(23:38) 보라 너희 집(영혼의 집..마음)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율법의 이 세상 사람이 진리로 거듭나지 못하면 말로만 예수를 믿고 마음으로는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마13장에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마음이 황폐화 되는 원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돌밭에 씨를 뿌린 자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믿음의 뿌리가 없게 되면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넘어진다고 하셨고, 가시떨기에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들의 마음이 원함은 있으나 원치 않는 길로 가게 되는 원인은 육에 속한 율법의 마음에 있다. 8:6-7“(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7: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함과 같이 진리로 거듭나지 못하고 율법의 마음에 머물게 되면 결국 그 심령은 황폐화 되고 만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서 율법 아래서 벗어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기 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율법의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알고 섬겼지만, 결국 죄 아래 있는 자들을 율법의 돌로 쳐 죽이는 역사만 할뿐이고, 그들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음을 알지 못하여 사울과 같은 믿음 아래 거하게 된다. 이제 바울의 믿음을 받아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은 비밀은 예수를 바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데, (23:39)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하심같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 우리들의 심령에 오셔서 친히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예수를 바로 만나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예수를 바로 만나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에서 역사하는 육신의 옳은 생각들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폐화 되어 간다. 예수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형제들을 정죄 심판하는 스스로 심판주가 되어 섬기는 자가 아니라 군림하는 자로서 살게 된다.

예수님 이 땅에 오시기 전이나, 예수를 믿는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 아래 매여 종노릇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이제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좌우를 분별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때가 지금인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형제를 돌로 치는 사울의 믿음에서...바울의 믿음으로

진리의 성령으로 오시는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