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대적하는 자들(2:1-6)

 

세상에서 예수 곧 참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창조 받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있으니 누구인가?

대적이란 상반된 관계를 말하는데, 서로가 맞서서 겨루는 관계를 대적이라 한다. 진리의 주인이신 예수를 대적할 자가 누구인가? 바로 율법의 주인이신 아담이 대적의 관계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원수 대적의 관계는 육신적 물질적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진리)과 땅에 법(율법)은 본질이 다른 대적의 관계이다. 이와 같은 비밀은 지금까지 십자가의 도안에서 좌우를 분별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경륜 섭리는 십자가의 도안에서 두 법인 율법의 말씀의 주인인 아담과 진리의 주인인 예수로 말미암아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게 되면, 영적인 비밀은 알지 못하고 육신적 물질적인 것으로 믿음이 치우치게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할 때에 여호와를 따르던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고 정죄하며 대적했는데, 이는 그들이 율법 아래 믿음을 세운 자들이기 때문에 진리를 싫어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에배소 교회 종들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고, 신앙하는 과정 중에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이란 예수께서 처음 밝혀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이루어 주신 대속의 사랑 곧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영접함이다.(죄 사함)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라고 믿을지라도, 십자가의 도를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는 순종의 믿음(행함)이 없게 되면 자신의 마음에 새긴 율법으로 말미암는 스스로 속게 된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믿음과 행함이 하나가 될 때에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되는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신의 마음에 새긴 율법으로 말미암는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결국 자신의 옳은 생각에 매여 스스로 속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적인 자신의 마음속에서 발견되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한 성전의 주인이신 보혜사께서 함께 하시지 않게 된다. 촛대가 옮겨지게 되면 결국 구원은 없게 된다.

예수를 대적하는 세력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는 은사 역사를 행하는 자들, 골고다의 길에 십자가를 지시고 가는 예수를 조롱하고 핍박하던 자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자들,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자들은 다 예수를 대적하게 된다.

예수를 대적하는 오늘날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누구인가? 마음에 주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영접하지 않게 되면, 누구든지 예수를 대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