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신앙(32:22-28)

 

에서와 야곱의 신앙은 차이가 있는데, 에서는 야곱에 비하면 의로운 자라 할 수 있고, 야곱은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탐욕으로 가득한 자라 할 수 있다.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자이고, 20년 외삼촌의 삶 속에서 아내와 자식과 물질을 소유하게 됐고, 목적을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자이다.

그러나 삶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자였다. 형 에서의 곁을 떠나갈 때에 벧엘에서 돌배개의 밤에도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샇았고, 또한 압복 강나루에서 가족과 소유 물질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던 밤에도 기도의 단을 샇았던 야곱!

우리들의 삶에 어려움이 잇을 때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야곱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야곱의 신앙에 보면 수평적 인간관계 곧 에서나 외삼촌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했던 것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야곱은 압복 강가에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옛 야곱은 무너지고,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 후에 능력을 입어 무서운 형 에서에게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압복 강을 건너게 된다.

이후 야곱의 믿음은 대 전환을 맞게 되는데,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차지했던 교활한 야곱에서, 온전히 형 에서에게 일곱 번을 절하는 온전히 순종하는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기 전에는 사람의 생각에 따른 수평적 믿음이라면, 새 이름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수직적 믿음의 관계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10:29-30)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하셨는데, 우리들의 믿음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수평적 믿음이 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를 통해서 하나 될 수 있다. 영원히 함께할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14:16)를 우리들 마음 가운데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여 가지인 내가 포도나무인 예수와 접붙임을 받을 때에 하나가 된다.

보혜사께서 오시게 되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에게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오직 진리의 성령 보혜사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도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없는 나를 비워드릴 때에 보혜사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먼저는 내를 이기고 또한 외부로부터의 모든 미혹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야곱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심같이, 우리들도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고 모든 어두움을 이길 능력을 주시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었으나, 내 몸을 쳐 복종케 하는 신앙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순종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변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내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