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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께서 주시는 마음에 평안(14:25-31)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람이 마음에 평안이 없이는 결코 행복이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 새긴 율법(2:15)으로 말미암는 육신의 생각(8:6)으로 인해 죄를 짓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세상의 물질이 행복을 누리는데 필요하긴 하지만, 결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지는 않으며,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율법의 사람의 마음으로는 진정한 평안이 없으며, 마음에 평안은 오직 예수 곧 예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할 때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된다.

율법의 사람에게 진정한 평안이 없음은 율법은 정죄의 법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을 때에는 판단하게 되고 저주하게 되고 또한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양심의 법에 걸리게 되고 또한 외부의 법에도 저촉을 받기 때문에, 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를 고소하는 자가 내 안에도 있고, 이 세상에도 넘쳐나고 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예수께서는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8:1) 그러면 정죄하는 자가 누구인가?

(5: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하셨는데, 모세는 율법의 종으로서 율법 아래 있 자들이 고소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죄에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어 주시고,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마다 자유를 누리게 된다.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14:29) 이제 일이 이루기(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는데, 죽으심이 없이는 우리의 믿음도 자유도 영생도 구원도 없다. 우리들의 마음이 죄 가운데서 자유롭지 않게 되면 마음에 평안은 있을 수가 없다. 죄 가운데서 지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죽어 주셨고, 다시 사셔서 이루어 주신 첫 열매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으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마음에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새긴 율법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또한 율법의 주관자이고 모든 인생들의 땅에 아비(23:9)인 첫 사람 아담 곧 세상임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들의 주관자가 율법의 세상임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수님의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에게는 세상임금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게 되고, 그 때에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믿음)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행함)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좌우를 분별하여, 세상임금의 진노 저주 가운데서 벗어나, 십자가의 도를 믿음과 본받아 순종하는 행함이 하나가 되어 참된 마음에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진정한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