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비와 늦은 비


 

@ (약 5:7)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가 땅에서 농사를 져서 바라는 것은 열매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입이 나고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추수합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곡입니다.


이른 비에는 어린 싹을 보호하고 자라게 함이지만, 늦은 비는 알곡으로 결실케 함입니다. 세상의 이치와 같이 우리들의 영혼의 결실도 이와 같습니다. (갈 4:1-3)에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직이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하셨는데, 아들이 장성하기 전 종과 다름이 없어서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을 때에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서 죄의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아들의 영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됩니다.


이는 율법의 믿음 아래 있을 때는 이른 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영 곧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로 말미암는 늦은 비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알곡(아들)의 역사입니다. 


알곡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모진 비바람과 폭풍과 자연 재해의 풍랑을 딛고 열매를 맺듯이, 아들이 되는 길에도 고난과 핍박과 죽음의 길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를 본받아 따라 갈 때에 (요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함과 같습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율법의 믿음에서 진리의 믿음으로, 종에서 아들로, 이른 비에서 늦은 비의 역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늦은 비 역사에 참여하는 아들들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1)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로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참고 견디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심은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道) 사랑위에 세운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택한 아들들을 미혹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 24:11-1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함과 같습니다.


@ (약 5:9) 형제들아 2)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원망은 율법에서 비롯되는 마음으로 자신의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원망하게 됩니다. 이는 입으로는 예수를 믿고 시인하지만,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음으로 모든 일을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고자 함에서 비롯됩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하신 것을 우리들은 마음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시는 영혼의 심판자이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계3:20)  보혜사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율법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기 질투 원망의 세력을 멸해야(요일3:8-9) 거듭나서 언제 어느 때에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준비된 자가 될 것입니다.


@ (약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3)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구약이나 신약에서나 구원받은 아들들의 가는 길에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능은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허락된 길은 그러하지를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눅 9:24)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내 목숨까지라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순교가 그들만의 길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 길을 본받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를 본받는 믿음은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벧전 2:21)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함과 같습니다.


예수를 따라 가는 자(눅(9:23)가 예수를 바로 섬기는 자(요12:26)입니다. 이른 비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따라가지 못합니다. 불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늦은 비 역사에는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 (약 5:11) 보라 4)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 사랑은 인내의 말씀입니다. 고전13장의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 견디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忍)견디는 것(耐)은 인내(忍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인내는 인내가 아닙니다. 또한 인내가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위해서 오래 참고 기다리심 같이 우리도 십자가의 도 사랑으로 끝까지 견디는 인내의 믿음을 보혜사와 함께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