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빛에 들어가자


 

세상에 있어 빛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우리들의 영혼도 빛이 없으면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빛은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 곧 첫 열매로 빛의 말씀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었고, 그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는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됩니다.


믿지 않는 그들은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지 못해서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빛 앞에 나오지 않음은 고침을 받을까봐 두려워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일들이 들어나고 들어난 어두움의 일들이 고침을 받을 때에 복이 됩니다.


그러나 넘어지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두움의 일을 빛보다 사랑함으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예수는 표적입니다. 그 마음에 예수께서 있느냐 없느냐는 곧 구원과 심판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혼 구원의 역사는 율법의 어두움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내어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셔서, 우리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그의 소유된 백성이니”하심을 이루려 함입니다.


기이한 빛은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려는 빛은 어두움 가운데 달빛과도 같은 것으로 있다가도 없는 없어질 것으로 영원한 빛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빛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세상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빛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때(죽으심을 본받음) 성령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빛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빛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움이 있는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어두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빛으로 오셨지만, 그들의 배척으로 이방인인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는 역사입니다.


이제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의 정체가 들어남으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바로 보고 고침을 받고자하는 자에게 빛의 역사가 있습니다.    


(엡 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 모든 인생은 본래 율법 알서 태어난 죄의 종입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의 도안에서 믿음으로 빛의 자녀가 되게 됩니다.

빛의 자녀에게 있어 때를 따라 비추어 주시는 빛의 말씀은 어두움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고쳐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엡 5:13)에는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의 말씀과 같습니다.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는 빛이 아니고 빛의 말씀입니다. 빛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친히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이루신 십자가의 도를 바로 깨달아 알고 믿으며 순종할 때에 빛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마 5: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마 5:16)에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요일 1:7)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하셨고, (요 8:12)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또한 (요일 2:10)에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셨는데, 이웃 형제를 사랑하는 길은 빛 가운데 거하는 자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요일 1:5)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 기이한 빛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새긴 율법으로 인한 어두움을 보는 자는 고침을 받고자 기이한 빛에 들어가야 합니다.


기이한 빛은 촛불의 비유와 같습니다.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희생하지 않고는, 죽으심을 본받지 않고는 기이한 빛에 들어 길 수 없습니다.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순종하여 기이한 빛이 들어가는 아들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