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예수를 만나리라(마28:1-10)


 

안식 후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의 일행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만나려고 장사지낸 무덤에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천사로부터 예수님은 살아 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빨리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예수를 만나리라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이 육적 이스라엘의 갈릴리를 말한다면, 모든 믿는 자는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방으로 가야 하겠으나, 이는 말씀 안에서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갈릴리 지방의 백성들은 흑암에 앉아 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이는 죄와 사망 가운데 갇혀 있는 백성들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 백성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죄와 사망의 땅인 갈릴리 지방에서 유다를 제외한 11사도를 택하신 것이다.


구약에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유대 백성들이 자기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방인들과는 구별됨을 내세워서, 이방인들을 핍박하고 멀리 했으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의인들이 되어 있는 유대 백성들이 아니라 죄인들인 갈릴리 백성들에게 오신 것이다.


이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죄와 사망의 땅인 갈릴리 지방에서 사도들을 택하셨고, 부활하신 예수님 곧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서도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시는 것이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을 당시에도 예수를 보고도 인정하지 않고 영접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에 부활하신 예수님 곧 영으로 오시는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영접할 자가 누구인가??? 빨리 갈릴리로 가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곧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과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구약의 율법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는 결코 죄와 사망의 율법 아래서 벗어날 수 없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자,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어 주시고 다시 사셔서 이루어 주신 첫 열매인 보혈의 공로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아 율법과 진리의 좌우를 분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가 비밀로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곧 십자가의 도를 밝혀 주시고,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의 죄와 사망의 주관자가 첫 사람 아담으로 들어난 것이다. 모든 인생들은 첫 사람의 율법 아래서 태어나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으며, 그로인해 죄의 억압과 두려움 가운데에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구약의 율법의 믿음으로는 결코 죄와 사망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곧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야 한다.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먼저 율법의 정체를 깨닫고, 다음은 자신이 율법 아래 갇혀 있음을 바로 보라! 모든 사람의 마음은 율법의 인격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롬2:15) 이는 자신을 아는 길이다.


이방의 갈릴리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우리들의 심령이다. 자신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와 사망의 심령 땅을 바로 보는 자는 벗어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눅9:23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고, 사도 바울은 갈2:19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릴리로 가라 함은 부활하신 예수 곧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의 정체를 바로 깨닫고, 먼저는 자신의 마음에 새긴 율법의 인격을 바로 보고 버릴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는 갈릴리로 가는 것이고, 그 곳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