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엡2:11-18)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신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는 만민을 구원하실 구원의 도리이며 구원의 문이다.(롬5: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인생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 주심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시므로 새로운 영의 세계의 시작임을 알게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들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주님은 우리들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 하신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이 세상 만민들의 모든 죄의 짐을 지신 것이다. 모든 인생들이 받을 저주를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이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모든 인생들이 율법의 저주 아래 있음을 말하며, 그 저주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시고 믿는 자들을 죄 가운데서 속량하신 것이다.

마(20:20-28)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실 고난의 잔 곧 모든 인생들의 죄의 짐이다. 그러나 아들들의 어미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며 예수께서 이루실 십자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마실 고난의 잔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십자가 하나 지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좌 우편에 앉을 수 있는 분은 누구인가? 이는 사람의 육체로 말미암아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말씀한다. 아담과 예수를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만 알고 믿고 있으니, 예수님이 마실 고난의 잔도 감당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고 있다.(고후5:16참고)

모든 인생들의 배후에서 두려움과 무거운 짐으로 억압하는 자가 누구인가? 우리를 사망의 권세로 두려움을 주는 자에게 보혈의 피를 지불하시고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신 것이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로 세상 임금이 들어나 심판을 받고, 그 가운데 거하는 인생들이 믿음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이는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세상 임금의 정체가 들어남으로 우리를 억압했던 사망의 세력의 주인공을 알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사랑 곧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보혜사께서 각 심령에 빛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며 심령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역사하는 모든 죄의 세력들을 밝혀 멸하여 주신다.

어떻게 멸하여 주시는가? 먼저 십자가의 도 사랑을 알아야 한다. 아는 자는 어두움을 볼 수 있다. 또한 본 자는 십자가의 도를 본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생들이 율법의 인격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의 세력들은 율법 안에서 비롯되는바, 자아를 바로 보고 자신을 부인하는 길 뿐이다.

우리들 각자의 심령은 율법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아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죄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좇지 않고 성령의 소욕인 십자가의 도를 본 받고자 하는 자에게 보혜사께서는 능력으로 함께 하시어 어두움의 세력을 드러 내어 멸하여 주신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세상 임금(사단, 마귀)의 정체를 드러 내어 심판하여 주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들이 받을 저주를 받아 주셔서 자유를 주신 것이다. 이제 자유를 받은 우리들은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세상 임금의 졸개들(마귀의 자식들) 곧 더러운 죄의 세력들을 멸하는 길은 먼저 우리 자신들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율법)를 지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와 우리들 자신의 십자가를 분별하자!

예수님은 세상 임금을 심판, 보혜사는 죄의 세력들을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