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큰 싸움(히10:32)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율법의 죄와 사망으로 억압과 두려움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에게 빛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를 허락하시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 갇혀있는 우리들을 속량하셨습니다. 받으신 고난이 없었다면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세상에서도 고난이 없이는 진정한 삶의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정상에 오르는 길은 어려운 고난과 아픔이 함께 합니다. 하물며 천국에 이르는 길에 고난은 당연합니다. 허지만 누구든지 고난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정면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조롱과 핍박과 죽으심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난 없이 십자가의 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함입니다. 사(53:4-6)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 갇혀 있는 모든 인생들을 속량하신 하나님의 사랑!(롬5:8) 이는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로서 빛의 말씀이요 구원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고 본받아 따라야 할 새 언약의 말씀입니다. 빛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를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이 있게 됩니다. 이는 영생의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싸움입니다.


세상 육적 싸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과 싸워 이겨야 하지만, 영생에 이르는 영적 싸움은 상대자가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버릴 때에 보혜사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눅 9:23-2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러나 세상의 보이는 모든 것으로 왜 참고 견디어야 하느냐?, 왜 바보같이 져야 하느냐? 고, 사단은 우리들을 미혹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사랑은 오래참고 견디는 인내입니다.(고전13장)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믿음으로 나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육의 모든 소욕들을 십자가에 못 밖는 고난의 큰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이 내 육체에 채워지고, 내 육체에 십자가의 도 말씀이 인격으로 이루어져 빛의 아들들이 됩니다.


(골 1:24-25)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빛의 아들들의 행함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갈 2:19-20)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인격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율법의 인격인 것을 깨달아 알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곧 율법을 향하여 죽는 자가 될 때에 보혜사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살게 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은 먼저는 자신의 육의 소욕과의 싸움이고, 다음은 외부로부터 오는 미혹으로부터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미혹과의 내적 외적 싸움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