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삼상(15:22)에 있는데, 구약에 있어서나 오늘날에 있어서나 하나님 앞에 예배(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많으나, 순종하는 자들이 많지 않으며 진정한 순종의 마음은 없이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배만을 드리는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이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함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 앞에 순종을 해야 하는가? 를 생각하면 실상은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순종을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먼저 하나님은 영이시고 말씀이심을 알아야 한다.(하나님=영=진리의 말씀, 요1;1, 4:24)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말씀 안에서 만 만날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신앙인들은 교회에 말씀의 은혜를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어떠한 말씀을 전하느냐? 에 따라서 어떠한 은혜를 받느냐? 가 결정되고, 하나님 앞에는 순종과 또는 불순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문자적인 그대로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 속에 감추어 논 비밀의 말씀이 있는데, 전자를 율법의 말씀이라 하고 후자를 진리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율법의 말씀은 ---세상의 초등 학문으로서 윤리 도덕적인 사람의 의를 위한 교훈과 같은 것이고,

진리의 말씀은---이 세상의 지혜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감추어져 있는 말씀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어 주시므로 말미암아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를 말하며, 이제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서 밝혀 주시는 비밀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위한 그리스도의 교훈이다.


문제는 율법의 말씀을 전하고 듣고 하면서도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으로 알고 잇는데 문제가 있다. 어떠한 말씀을 전하고 듣느냐? 에 따라서 믿음과 순종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사랑의 참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진리의 말씀 곧 십자가의 도를 알고 믿지 못하면--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아직은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갈3:23-25)


율법 아래서는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법 곧 진리의 말씀 앞에 순종할 수가 없음을 , 사울이 바울이 되는 과정과 갈4:1-8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수가 있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과 진리를 바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롬(6:16-18)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예수(진리)께서는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했고, 단지 약속하신 메시야를 고대한 것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는 결코 온전한 순종의 믿음을 소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근본적으로 예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거짓 사도요 목사요 교사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들로 인해서 원치는 않으나 불순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이 아닌 율법의 말씀을 가지고 영생이 잇는 것으로 가르치고 또한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믿고 따르고 있지 않은가!


고후(11:13-15)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 사도는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고, 대제사장의 명령을 받고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달려간 것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길이요 충성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실상은 참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사단의 종노릇을 한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도 원치 않는 죄의 종노릇하는 곧 불순종하는 원인을 바로 알아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순종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가 그 순종을 본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순종을 하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루어 주신 구원의 길 곧 십자가의 도 앞에 순종함이 거듭나고--영생의 길을 가는 것이다.


순종은 십자가의 도 곧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배풀어 주신 사랑(롬5:8)의 실천이다. 십자가의 도는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자기 부인과 죽으심의 결과인 밀알의 역사이다.(눅9:23, 요12:24)


사랑의 실천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롬(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본래 죄의 종으로 태어나고 종노릇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심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곧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는 다시금 죄의 종에서 해방 받고 의의 종이 되며 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정과 욕심의 근원이 되는 율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육신의 생각들을 십자가의 도를 본 받아서 못 박는 (죽는, 버리는)삶을 사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진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고난이 없이는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수가 없다.


히(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부할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갈2:19, 눅9;23, 고전15:31참고)


세상에 대한 나의 정과 욕심을 못 박는 자, 죽으심을 본 받아 죽는 자가 곧 순종하는 자이다.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 보혜사께서 능력으로 역사 하셔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부활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갈6: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