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는 새 언약(새 교훈)

 


(히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 8: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 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히 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 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위의 말씀은 이미 이 세상에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해 주신 말씀을 신약에서 인용한 말씀이다.(렘31:32-34)


구약의 신앙은 첫 사람 아담의 율법의 언약 아래 있는 신앙으로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창1:28)에게 주신 첫 언약으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라는 축복을 주셨는데, 바로 율법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모든 인생들은 생령인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누구든지 율법의 말씀 아래 갇혀 있다. 고전(15:45)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생령인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인생들은 태어나고 또한 갇혀 있음은 율법의 말씀 아래서 태어나고...율법의 저주 가운데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모든 인생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율법 아래 오셔서 우리들이 받아야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해 주신 것이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이 흠이 없는 언약의 말씀이라면 예수로 말미암는 새로운 새 언약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첫 언약인 율법의 말씀이 흠이 많게 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율법에는 없기 때문이며, 이는 간교한 사망의 법이기 때문이다. 첫 언약인 율법은 진노 저주의 법이지 죄를 사해주시는 사랑의 법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율법의 신앙은 모세의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 하면서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수천명씩 죽이는 역사가 있게 되고, 피는 마시지 말라 하면서도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피 제사를 받고 있으며,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저주하는 것이 율법 아래서의 신앙 상태인 것이다.


이는 구약의 신앙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율법의 말씀과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면,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여전히 구약의 율법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율법 아래서의 신앙은 진리이신 예수님과는 무관한 것임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율법은 진노 저주 사망의 법이고, 진리는 사랑과 화평과 영생의 법이다. 율법은 진리를 찾아가는 길잡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갈3:23-24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창조주 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은 첫 사람 아담(진노의 그릇)을 통해서 모든 역사를 이루시고, 천국은 오직 예수님(긍휼의 그릇)을 통해서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경륜 섭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십자가의 도안에서 밝혀지는 첫 사람 아담에 대한 비밀을 밝히 보라! 율법의 주인은 첫 사람 아담이요, 진리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 이 두 그릇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심판의 모든 역사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율법의 첫 언약과 진리의 새 언약을 분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