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신앙은 십자가의 도안에서

 

 

                              포기하는 자(마4:12-21)


 

사람은 날 때부터 무엇이든지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탐욕)을 가지고 두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난 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의 원인이 마음에 새긴 율법(롬2:15) 안에서 이루어지고, 이 땅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동일한 생각들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경쟁입니다. 내가 앞서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사회의 모습은 참으로 치열합니다. 그 결과 화평은 말뿐이고 시기 질투 원망 불평이 그칠 줄 모르고 분쟁으로 가득한 이 사회의 모습과 또한 우리들 심령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출세해야 하고,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고, 혈육으로 이겨야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교훈은 그와는 반대의 길을 가라 하십니다. 진정 예수를 믿어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율법 아래서 이 땅에 것을 향하여 달려가지 말고, 새로운 교훈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 오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려 순종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는 신구약 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에게도 자신을 포기한 순교적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아들 계집종에게서 육체로 말미암아 얻은 이스마엘과 약속으로 말미암는 아들 이삭이 있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먼저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육체로 말미암는 종의 믿음을 말하고, 다음에 영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아들의 믿음을 상징 예표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독생자 이삭을 제단에 드림은 자신의 목숨까지라도 드려 순종하는 믿음이요,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때서야 창(22:12)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믿음은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의 도안에서 포기할 수 있는 믿음에 있습니다.


야곱은 어떠합니까? 자신의 간교한 지혜로 형을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 차지하고 또한 부모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이 형 에서의 두려움을 피하여 라반의 외삼촌에게로 피하게 되고, 그 곳에서 아내와 자식들과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다시금 형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얍복 나루에서 식솔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기도할 때까지는 자신의 교활하고 간교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압복강 나루를 건너게 될 때에는 형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 남았던 것입니다.


홀로 남아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동안 간교하고 교활했던 마음을 굽히지 않는 야곱의 환도뼈(허리)가 위골 된 후에야 야곱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야곱이라는 본래 자신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신앙이 아니라, 새 이름인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얍복강 나루를 건너게 될 때에 환영을 받게되는 것을 봅니다.


이와 같은 교훈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신앙에도 본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또한 신약에는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택한 제자들! 베드로는 자신의 모든 생업과 부모를 포기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온전한 순종의 믿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세 번 부인하는 오류는 아직 새로운 약속의 이름을 받지 못했을 때이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한 후에는 순교적 믿음으로 복음을 위해서 순교했던 것을 봅니다.


바울의 믿음 또한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던 것은 혈과 육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간교한 지혜로 말미암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곧 예수를 아는 지식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믿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속량하시기 위해서 세상 죄를 지시고 이루어 주신 속량의 도리인 십자가의 도는 자신을 포기하신 십자가에 죽음(포기)으로 말미암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러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