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아래 믿음을 세운 자들은 청함을 받은 자이다

 


                             청함을 받은 자(마22:1-14)


 

본문의 말씀은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서 혼인잔치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이미 청한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독생자 예수님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우리들은 신부들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혼인 자리는 믿음이 없으면 맺어질 수 가 없습니다. 혼인 자리에는 많은 청함을 받은 자가 있어야 하고 즐거운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청한 자들이 각기 이유를 대면서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먼저 아담 안에서 세상의 모든 역사를 이루시고, 구약의 모세로 말미암아 율법인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 이미 선민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 안에서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율법 안에서는 신랑인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만 해 주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이들 위에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고, 그 결과 사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들은 아들을 만나야할 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다른 종들을 통해서 혼인잔치에 오라 하지만, 그들은 오기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율법의 유대 백성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고, 그들의 심령은 오직 세상의 것에 집착하여 물질과 육신의 병 고침을 받으며, 예수님을 세상임금으로 세우려고만 했습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세의 율법에 믿음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일에 집착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할 자들은 자기를 버리고 나와야 하는데, 이는 진리의 빛 앞에 율법의 어두움이 나아 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 안에서는 자신을 버리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 안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청함을 받은 자들은 자기 밭으로,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죽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음은 그들이 율법의 믿음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진노 저주 정죄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되 자기의 옳은 생각으로 열심만을 가지고 달려가지만, 실상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세상의 율법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세상의 물질을 향한 탐심으로 마음이 달려가고, 주님과의 혼인잔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1)자기 밭으로 가는 자들은 자기의 마음에 새긴 율법에서 비롯되는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자들입니다. 

2)자기 상업차로 가는 자들은 재물을 위해서 자기가 하는 육신의 기업에 잡혀 있는 간음하는 자들입니다.(세상과 벗하고자 함이 간음하는 자들..약4:4)

3)또한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는 자들은 말씀의 칼로 형제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는 자들 곧 사울의 율법의 믿음에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예수 안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 안에 갇혀 있음은 예수를 믿으나 세상의 물질 명예 권세등의 복을 받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 율법 안에 갇혀있는 증거가 됩니다. 이들은 청함을 받은 자들로서 주님과의 혼인자리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요14:16)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청함을 받은 자 가운데서 택함을 입기 위해서는 주님의 약속을 알고 믿으며 순종하는 자라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신랑 예수는 이름만 부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신랑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온전한 순종의 각오와 결단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예수를 더욱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자! 오직 그 길은 약속하신 보혜사(요14:16)를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만 부르지 말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