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선악을 분별하라!

 


             함께 죽고 함께 살자(고후7:2-4)


 

주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하셨는데, 영(진리)과 육(율법)을 분별하지 못하면 입술로는 영을 말하나 마음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에 매여 있게 됩니다. 이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율법 안에 갇혀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라면 율법(물세례) 아래서 죽고 진리 안에서(성령세례) 다시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진리이신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율법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율법과 진리에 대한 분별이 없게 되면 율법 아래 있으면서도 진리 안에 있는 것으로 잘못 알게 됩니다.


사람의 근본 인격이 율법이기 때문에, 율법 안에서는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과 충성을 다한다해도 주님의 뜻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바울의 핵심 신앙은 십자가의 도안에서 죽고 다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외식 신앙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영접하여 나는 죽고 오직 다시 사신 예수 곧 보혜사(그리스도=십자가의 도)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과 삶 속에서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해롭게 하지 않으며,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지?


1) 먼저 불의를 하게 되는 원인은 율법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고 자기의 옳은 생각과 뜻을 좇아 갈 때에는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는 불의가 됩니다. 자신의 인격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율법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불의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2) 다음은 해롭게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율법의 의인으로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일에 함께 했고, 다메섹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로 앞장을 섰던 바울의 신앙은 형제들을 해롭게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아는 지식을 바로 알고 난 후에 변화를 받아 바울 사도로서의 진리의 직분을 수행하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안에서는 모든 자들의 죄를 사해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해롭게 하는 것은 물질을 손해 입혀서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영혼이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의 도리를 바로 전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해롭게 하는 것이 됩니다.


3) 또한 바울은 전도 여행에 있어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에 속여 빼앗는 자가 누구일까요? 화 받을 자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5:20)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천국에 대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적인 교훈을 전하면서 세상의 복 받는 일에 열심인 자들입니다. 심령 부흥을 통해서 거듭나는 역사가 있어야 할터인데, 심령 부흥은 말뿐이고 세상의 보이는 복만을 강조하며 물질을 강요하고 있는 율법 아래서의 신앙으로는 결국 화를 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선악을 분별함은 오직 십자가의 도안에서 분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율법 안에서는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진리 안에서는 오직 선하신 사랑만이 역사 됩니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율법의 말씀(아담)과 진리의 말씀(예수)을 분별하지 못하면, 결국 율법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시인하고 믿을지라도,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죄와 사망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다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무역함은 자신의 옳은 생각과 뜻을 좇아 살게 되기 때문에 거짓이 됩니다. 또한 율법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전하고 듣고 믿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사망의 넓은 문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 편에서의 선악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선악 분별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도안에서 선악을 분별하고 선을 좇아 사는 길은 십자가의 도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누구도 악을 좇아 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안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마음으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함은 오직 영생의 길이 십자가의 도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길이 있음을 바로 알고 믿어, 보혜사께 순종함으로 모두가 영생의 길을 함께 갑시다.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도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