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마음 중심에 십자가의 도가 있는지를 보신다

 


                  더 큰일을 보리라(요1:47-51)


 

우선 하나님을 모르던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부터가 축복입니다. 육적 이스라엘 민족은 택함을 입었지만, 우리들은 본래 이방인들로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셨으니, 곧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모든 역사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십자가의 도안에서 깨닫고 믿을 때에만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나다나엘을 보았다는 말씀은 율법 아래에 있을 때에부터 알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우리들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들의 진실하고 거짓된 마음의 뜻을 감찰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믿음에 있는가? 세상에 속한 율법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있는지? 아니면 천국을 소망하여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는 진리의 믿음에 있는지?


율법의 말씀과 진리의 말씀을 십자가의 도안에서 바로 분별하여 자신의 믿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는 오직 사랑으로 진노 저주 판단 시기 질투 원망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 안에는 주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오직 진노 저주 판단 시기 질투 원망 두려움등이 있을 뿐입니다. 이 모두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됩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으로 말미암아 간사함이 일어나고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진노 저주 판단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아래에서 나다나엘이 간사함이 없음을 아셨던 것처럼, 지금의 이 시대에도 율법 아래 갇혀 있으나 가증한 일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겔9:4) 이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들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시고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믿어 아들로 택하셨습니다.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아들의 영 보혜사로 말미암아 아들되게 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됩니다. 이는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종의 믿음에서는 이 세상의 윤리 도덕적인 의와 물질적이고 정욕적인 것을 향하여 달려가고 또한 믿음을 세우게 됩니다. 물론 이들도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아직 하나님의 정한 때가 안되어서 아들의 영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종의 믿음 곧 율법의 믿음이라 합니다.(갈4:1-7)


율법은 사람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죄와 사망의 법이기에 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사람의 지혜와 열심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믿으려 할 때가 율법 아래 갇혀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습니다.(요6:41)


예수께서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신 더 큰 일이 무엇입니까? 이는 율법 아래에서의 역사보다도 더 큰 일을 말씀합니다. 율법은 본래 사람에게 주신 법이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더 큰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율법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죽으심으로 완성해 주셨는데, 바로 보혈의 공로인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 안에 불러 주시지만, 먼저 율법 아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아들의 영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아들로 구원하십니다.


율법 아래서도 참 이스라엘로 이미 택한 나다나엘에게 더 큰 일을 보리라 하심은 예수님께서 친히 죽으시고 이루어 주실 보혈의 공로를 말씀합니다. 이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오직 전능하신 주님(보혜사)의 능력으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혼 구원의 역사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님의 이루어 주신 더 큰일이 각인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에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의 더 큰 역사는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