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영원(고후4:16-18)

         

지난해에서 새로운 한 해로 우리들의 시간들이 옮겨 짐은 새로운 변화다. 새로운 삶의 변화는 시간과 시간의 만남이고 연속이 되어야 한다. 연속이 되지 못할 때에 심령은 변화 받지 못하고 정체되어 병들고 썩고 사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시 맞는 한 해에는 각자의 시간과 시간의 공간이 각기 객체가 아닌, 사랑의 줄로 하나가 되는 한 해가 되기를---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들 마음 안에서,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형제들과의 관계에 있어, 이 사회 속에서 빛의 역사를 이루는 값진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간의 개념은 이 세상에서 육신이 사는 동안에 필요한 것이고, 영원한 나라에서는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곳은 진리의 말씀 곧 사랑으로 통일된 영원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의 세상에서는 역사를 측정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또한 질서를 위한 기준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14절 넷째날에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년한"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사람은 그 시간에 맞추어서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고 행동하는 지능을 가진 창조물 중에 으뜸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 "시간은 돈(물질)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들을 아끼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세상의 물질을 취하지만, 이는 잠시 잠간의 없어질 영광(율법)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고, 그 결과 재물이 부요해지면 좋아하고 가난해지면 실망하고 원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한 순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삶이고, 영원을 사모하는 삶은 아니다. 물론 시간의 중요성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시간들이 마음 먹은 데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시간들이 사랑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속에서 마음 먹은데로 이루어질 때나 이루어지지 않을 때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 한다. 더욱이 앞날을 위해서는 이루어질 때 보다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랑해야 한다. 이는 자신을 시인하며 자신을 용서하는 사랑의 마음(주님의 마음)을 같는 것이다. 이 마음은 새로운 앞날에 영원을 향한 힘의 원천이다. 사랑은 오래참고 견디므로 이루어 내는 참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뜻하는 바 모든 일(영적이든,육적이든) 들이 알곡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할지라도, 그 하나 하나에 있어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고전(13:1-2)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시간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시간들을 사랑의 줄로 연결하여 영원을 사모하는 믿음에서 사는 삶은 더욱 복이 된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되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보혜사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영원한 나라의 축복(의의 열매)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영생의 소망의 삶은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 인도하시는 십자가의 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모든 시간 시간들이 하나로 통일되는--영원을 향한 올바른 삶을 살게 된다. 이는 이미 이 세상에서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금년 한 해가---우리들의 육신의 소욕으로 말미암는 정체된 시간들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 보혜사와 함께 함으로 영원을 향한 축복의 시간들로 이루어 지길---.

골(3:12-14)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시간 속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보혜사와 영생의 삶을--

정체된 시간들은 십자가의 도 사랑안에서 변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