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진노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도

 


                              율법의 저주(갈3:10-14)


 

우선 저주는 율법의 정죄 능력에서 비롯되는바, 예수님(진리)의 사랑과는 본질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주를 누가 행사하는가? 를 바로 알지 못한 것은 진리와 율법을 같은 것으로 알아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사랑도하고 또한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도 하는 것으로 알아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과 진노가 함께 역사했습니다. 이는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율법 안에서의 선과 악으로서 롬13장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진노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세움을 받은 종들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참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사랑이시지, 결코 진노 저주 정죄는 없습니다.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간음한 여자를 데려와 율법에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있는데 당신은 어찌하려는가? 물을 때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할 권한이 없음을 밝혀 주셨습니다.(요8:5-11)


또한 롬(8:1)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진노 저주가 난무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은 아는 것으로 그치는가? 아니면 먼저 자신부터 실천하고 이웃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의 모습은 과연 사랑이 있습니까?


사울 이었을 때나 바울 이었을 때나 참 하나님을 섬기고자하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율법의 여호와 하나님) 이었을 때에는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고, 바울(진리의 참 하나님) 이었을 때에는 살리는 일에 앞장을 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이는 참 빛의 말씀을 만나기 전에 사울은 말씀에 대한 분별이 없었습니다. 비록 율법의 의인이었으나 땅에 속한 의인이지, 결코 하늘에 속한 의인이 아닙니다. 이 때에는 진리와 율법에 대한 분별이 없는 때 곧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을 때입니다. 율법의 초등학문 아래 있을 때에는 종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밝혀 주신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받기 전에는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율법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게 됩니다.


초등학문 아래 있을 때에는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으면 정죄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때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자신의 옳은 생각과 뜻으로 열심만 내는 때입니다. 이를 히브리서에는 젖을 먹는 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단단한 식물을 먹고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로서 곧 장성한 자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히5:13-14)


믿음이 어려서는 저주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의 믿음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선악을 분별(영 분별)하여 모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노 저주는 율법에서 비롯되는바, 율법의 여호와 하나님과 진리의 참 하나님이 다른 것을 바로 깨달아 알고 분별해야 합니다. 이제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주 가운데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이루어 주셨지만, 지금까지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에게 감추어져 있던 십자가의 도 말씀을 보혜사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까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으로 알아 왔으나, 율법의 총칙은 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아담의 속 사람 영혼)에게 주신 것을 말씀으로 증거 합니다.


첫 사람 아담 아래서 태어나는 모든 인생들은 율법 안에 갇혀서 율법의 저주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생의 종말은 육체의 사망이고 다음에는 영혼의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사망의 길을 피할 길을 열어 놓으셨으니, 십자가에 죽어 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지? 보혈의 피를 받은 자가 들어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단번에 보혈의 피를 받은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피의 제사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가?! 아직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해서 참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렘31:33-34)


십자가의 도안에서 좌우를 바로 분별하여 율법의 저주 가운데서 온전히 벗어납시다.

 

 

율법의 저주 주인공은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 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