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자리는 육신의 마음이고, 마음은 율법의 말씀이다

 

  

                       죄(罪)의 자리(롬7:7-13)


 

죄에 대한 문제는 구원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신앙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육신의 보이는 죄와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육신적인 죄는 세상의 처벌을 받게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죄는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양심의 법에만 걸릴 뿐이고 세상의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죄는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 의 심판이 꼭 있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육신에 속한 마음의 생각들이 죄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해결의 방법을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육신의 병든 자들을 많이 고쳐 주셨지만,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오셔서 마음(영혼)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무엇이기에 고침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들의 땅에 아비가 되는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을 하나님께서 율법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자는 율법의 말씀 인격을 소유합니다.


율법은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 안에서 정죄 판단 저주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와 평강은 오직 예수 안에 만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로 태어남은 조금도 진리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죄라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율법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만 존재하는 실존입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서는 죄가 죄로 들어 나지 않습니다. 정죄 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노 정죄하는 능력은 율법이고 그 결과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율법의 선악간에 “간음하지 말라”“살인하지 말라” 등의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인해서 무엇이 간음이고 살인인지?를 알게 되지만, 알게만 할뿐이고 안 할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에 마음 안에서 간음과 살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의 인격이 율법의 말씀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롬(7:11)에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는 죄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히7:16)으로 말미암아 역사 합니다. 계명의 법이 없으면 죄가 죄로 정죄 받지 않습니다.


율법의 말씀 자체는 거룩한 말씀이지만, 율법이 육체와 함께 할 때에는 진노 정죄의 능력이 됩니다. 사람의 인격이 본래 율법의 인격이기 때문에 죄가 역사를 해도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만 찾으려하지 자기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양심의 법에 걸려 죄가 들어 나도 자기에게는 관용하고 남에게는 용서가 없음은 진노 정죄의 법인 율법 안에 갇혀 있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 하심은 율법 안에서는 사랑과 용서가 없고 오직 진노 정죄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사망의 역사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한 자는 실천해야 하는데 바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들보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서 들보를 알지 못하는 자는 자기의 십자가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길은 자신의 인격이 율법임을 알고 율법을 향하여 죽는 것입니다.(갈2:19)  이는 십자가의 도를 본 받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게 될 때에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세상에 불필요한 것들도(충, 쥐, 바퀴벌레등) 더러운 곳과 어두운 곳을 좋아합니다. 죄는 어둡고 불의한 곳에 역사하며 번식합니다. 율법은 어두움이고 불의의 열매를 양산합니다.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욱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율법의 말씀 위에 믿음을 세우고 있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로서 결코 죄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참 하나님의 참 빛=십자가의 도 사랑 안에 거하여 조금도 죄가 자리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혜사께 순종합시다.

 

 

죄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은 오직 십자가의 도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