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사망의 법=율법에서

 

  

                   주님께 맡기자(롬14:1-4)


 

이 세상에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의지를 두고 있는 바탕이며, 마음의 자리입니다. 그 믿음의 자리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보이는 피조물 가운데 두고 있는가? 이는 하늘과 땅, 구원과 멸망, 생명과 사망의 차이이며, 참된 행복과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차이를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선 보이는 것으로 근시안적인 신앙의 삶 속에서 달려감은 모든 것이 육의 소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하늘에 것이고 무엇이 땅에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 물질을 향하여 달려가면서도 믿음이 좋은 줄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 땅에 속한 우리들이 믿는 것으로서, 땅에 속한 우리들 자신을 부인하고 버리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바로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뜻을 버리는 자(마음의 문을 여는 자)에게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 들어오셔 능력으로 역사 하십니다.


보혜사로 말미암아 능력을 입은 자는 모든 면에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형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은 자기의 옳은 생각과 뜻을 펴기 위해서, 형제의 잘못을 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자기를 버리지 못한 자에게서 나오는 사람의 속성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비교를 하는 것, 견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율법 안에서 주어지는 것으로---세상에서 없을 수는 없겠으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버려야할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셨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어려서 채소(율법의 세상 초등학문)를 먹는 신앙도 귀한 것입니다. 후에 때가 되면 아들의 영 곧 보혜사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갈4:1-7) 형제들의 생각을 비판하지 말고, 오래참음과 기다림으로 보혜사께서 하나를 이루어 주실 때까지입니다. 이는 저를 세우는 권능이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판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어려서나 장성해서나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형제를 비판하고 판단하여 죄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형제를 믿어 주고 신뢰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율법 아래서의 열매입니다. 판단은 오직 예수님께 맡기고 우리들은 사랑과 관용과 용서만이 우리들에게 주신 권능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알고, 믿음에 있는 자나 믿음에서 떠나 넘어지는 자나, 그 모든 역사가 제 주인에게 있음은 자신의 마음을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쌓은 선에서 선이 나오고, 쌓은 악에서 악이 나온다고 하셨는데(마13:35), 열매를 보아 안다고(마7:16) 하심 같이,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시의 믿음에 설수가 없습니다.(갈3:23) 


우리들은 때때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내가 자라게 하고 장성하게 할 수 있는 듯이 말하고, 상대를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람의 지혜로 약간의 변화는 가져 올 수 있으나, 우리들의 마음은 결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마음의 변화(거듭남)는 오직 전능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뿐입니다. 보이는 세상에 개혁의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되어 왔으나, 이제 심령에서부터 일어나는 개혁의 역사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는 길만이--나를 알게 되고--나를 버려야 하는 원인을 알게 된 후에 나를 부인하게 되고--나를 부인하고 마음의 문을 열면--내 마음 속에 보혜사께서 오셔서 능력으로 역사십니다.


오직 주님께! 오직 보혜사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만이 형제를 비판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들에게 주신 십자가의 도 사랑을 먼저 실천하고 빛의 역사를 이루는데 있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영적인 것이나 육적인 것이나 모두를 구별시켜 주십니다. 영적인 하늘에 것으로 축복을 받은 자는 육적인 이 땅에서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것으로 먼저 축복을 받고자 하는 자는 하늘에 것으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 항상 기억해야할 것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계명을 준행하는데 있습니다. 이는 비판이나 판단이 아닌 십자가의 도안에서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소유하는데 있습니다. 보혜사께서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소유하자!

 

 

형제를 관용하고 용서하는 능력은 십자가의 도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