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죽음의 비밀(롬5:8-11)


 

성령께서는 “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는데, 주안에서 죽는 다함은 무엇인가?  사람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에 자기의 욕심 안에서 큰 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게된다. 그러나 그 꿈이 얼마나 이루어질까?


전도자는 세상에 모든 행사가 헛된 것을 쫓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창공에 구름이 각양 아름다운 모양을 이루지만, 때가 되면 사나움으로 변하고 또한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는 있다가 없어질 것이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각 심령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나, 그 사모함이 세상의 것으로 이루려 하기 때문에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사람의 한계일 것이다.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영원한 세계로의 출발임을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욕구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초조함과 두려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죽음의 과정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을 말하고 원하면서도 진정한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스스로 생각한대로 조정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행복은 없을 것이다. 이는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육체가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누구도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도 두 가지의 죽음이 있음은 죽음의 비밀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일반적으로 아는 육체의 죽음이다. 이 육체의 죽음도 저절로 때가 되어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되는 원인이 있다. 죽음은 죄로 말미암는 것이고 죄는 율법의 정죄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의 인격을 이 땅에 속한 율법의 말씀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아담의 율법 안에 거하는 우리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결과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육체는 믿는 자나 불신자나 똑 같이 한 번은 죽음을 거치게 되어 있으나,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떠한 믿음을 소유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 가느냐?에 따라서 그의 영혼은 영원한 천국에 아니면 영원한 멸망의 나라에 가게된다.


율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면서도 죄를 정죄하고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망의 능력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한다. 율법 안에서는 모든 일이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강제적이기 때문에 생각한 바가 이루어지면 기쁘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분하고 낙심하고 죄절하며 원한을 품으며 결국은 한을 맺게 된다. 아담의 인격인 율법의 사망권세 아래서는 불순종할 수밖에 없고 육체의 죽음 뒤에 영혼의 멸망인 불 못(둘째 사망)이 있을 뿐이다.


다음은 영혼의 죽음이다. 영혼의 죽음이란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안에서 자신의 옳은 생각들을 버리는--죽이는 것이다. 주님의 원하심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심의 본을 보여 주셨고 그 길을 따라 오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함께 죽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딤후(2:11)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죽으심을 부인하는 자가 결코 살(거듭남=부활)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옳은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들어 날 까봐 “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함과 같이, 그리스도 곧 십자가의 도안에서 죽고자 할 때에 사는 길이 열림을 우리들도 알아야 한다.  예수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림은 죽음을 각오한 믿음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막10:27-30참고)


이 땅에 불신자는 재물을 섬기고, 믿는 자 가운데는 예수의 이름으로 재물을 섬기는 자가 있고, 오직 약속하신 성령 보혜사로 말마암아 예수님 만을 섬기는 자가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으로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해야할 때이다.


아담 안에서의 죽음은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는 강제적인 죽음이고, 예수 안에서의 죽음은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내 스스로 죽는 것이요 버리는 것이다.(요10:17-18) 이는 기쁜소식인 그리스도 곧 십자가의 도안에서 주시는 보혜사로 말미암는 거룩한 죽음의 축복이다. 죽음 뒤에 다시 사는 길이 있음은 오직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는 믿음에 있다.  주안에서의 축복 받는 거룩한 죽음은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는 믿음에 있다.

 

 

죽음의 비밀은 십자가의 도 사랑을 본 받는 믿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