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나 사이에 매인 것은 십자가의 도안에서 풀어야

 

 

                           매인 것을 풀자!(마16:15-19)


 

세상의 힘은 각각 있는 것을 하나로 묵고 맬 때에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뭉치면 살고 해여지면 죽는 다고 했는데, 이는 세상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사람의 지배를 받는 율법 안에서는 뭉치면 뭉칠수록 힘은 강해진다.


그러나 하늘의 법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국 역사는 육신적인 물질적인 역사가 아니라, 심령에서부터 역사 되는 것으로, 뭉치면 뭉칠수록 아집만 강해지고 마음은 강팍해 지는 것이다.


땅에 일과 하늘에 일은 정반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예수님은 우리들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어 있는 매듭을 푸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있다. 하나님은 아담 율법 안에 갇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시며, 우리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를 입으로 시인하고 인정하며 믿을 때에, 하나님과 우리들의 중간에 막힌 담이 헐리게 된다.


이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우리들의 각자에게 있어 믿음으로 매인 것을 푸는 것이다. 다음은 그 사랑을 힘입어 이웃과의 매인 것을 풀어야 한다. 우리들 서로간에 심령에서 매이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이것은 육신적인 물질적인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서 심령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혈육으로 말미암는 육신의 소욕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갈(5:24)에는“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신 것이다. 먼저 심령에서 정과 욕심이 발동하고, 육체와 함께 죄의 열매를 맺게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민족은 한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 만큼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정이란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는 장애가 됨은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의 차이이다.


정이 많은 민족이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정이 한으로 변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지만, 이는 자기의 뜻에 부합할 때뿐이고, 자기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을 때에는 시기 원망으로 변하고 결국에는 한이 되는 것이다.


이 맺힌 한을 푸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시인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16절). 바로 그와 같은 자가 복을 받기 때문이다(17절). 땅에 속한 인격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나,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고 시인하게 된다.


다음에 그와 같은 자들에게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의 열쇠를 주시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권세도 감당할 수 없는 전능하신 능력의 열쇠인 것이다. 절대로 불가능한 하나님과 우리들의 사이를 하나될 수 있도록 마음에 문을 열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십자가의 도 사랑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부터, 오직 나를 구원하실 이는 예수님뿐인 것을 알고 마음에 문을 열게 된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하시고”(19절)


하나님의 나라는 혈과 육에 있지 않으며, 오직 십자가의 도 사랑의 능력에 있다. 혈과 육으로 말미암는 정과 욕심으로 매여 있는 한의 역사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매인 것을 푸는 역사는 먼저 자신의 마음 땅에서부터 십자가의 도 사랑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혈과 육은 각자가 뭉칠 때에 강해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매인 것을 각자가 풀 때에 보혜사께서 역사 하시여 강해진다. 천국의 열쇠 곧 십자가의 도안에서 주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케 말라!(히4:7)

 

 

나와 형제들 간에 매인 것은 내 안에서 먼저 풀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