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것과 온전치 못한 것의 기준은 오직 십자가의 도

 

 

                     온전한 것이 오면(고전13:8-13)


 

이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이 어떠하길레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는가? 이는 세상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대로 심판하심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모두가 구원함을 받게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는 본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주관자로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땅에 속한 율법의 말씀을 주어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첫 사람은 완전한 진리의 말씀을 주어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완전치 못한 율법을 폐하려 하심이 아니라 완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것이 죽으심으로 이루신 십자가의 도 사랑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온전치 못한 것은 무엇인가? 이는 온전한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알고 믿기 전에는 모두가 율법의 말씀 안에 갇혀 있는 것이고, 율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치 못한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의 말씀은 롬(5:8)의 죽으심으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 예언 방언 지식도 다 없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서 각종 은사 외에, 고전(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3장에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머리의 역사가 있고 지체의 역사가 있는바, 머리는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의 역사이고, 지체는 각종 은사의 역사로서 천사의 영들의 역사입니다. 지체의 역사는 부분적인 것을 역사하고, 머리의 역사는 모든 지체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지체의 역사는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있으나, 머리이신 보혜사의 역사는 받은 자의 심령 안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영안이 열린 자만이 볼 수가 있습니다.


지체의 역사 가운데서는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들과 같으나, 어린아이가 장성하면 그 때를 다 잊어버리고 장성한 자의 역사를 하게됩니다. 히(5:14)에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지각이란? 선악을 분별하는 의의 말씀 곧 십자가의 도안에서 이루어지고, 십자가의 도를 본 받는 믿음 안에서 육체의 고난 곧 연단을 통해서 온전치 못한 것이 장성한 자의 인격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고난을 피해가려 하겠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고난 곧 죽음 뒤에 기쁨이 부활이 있음이 비밀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겠는가! 이는 온전한 것(십자가의 도=사랑)을 받고 택함을 입은 진리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 말씀을 받고 사랑을 입었다할지라도, 그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지 않으면, 빛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에게는 그 사랑을 감사해서 온전히 실천하는 삶(믿음+행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약속을 받은 자가 그 약속을 지키므로 빛의 역사를 통해서 의의 열매가 맺어지고 구원의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의 일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율법)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재능 안에서 각양 좋은 은사를 통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의 도를 본 받아 행하지 않는다면, 마(7:21-23)의 말씀과 같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책망 받을 것입니다.


믿음이 어려서는 사람들의 강요에 의한 또는 자의적으로 사랑을 해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과정은 될 수 있어도 결코 하나님의 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도(예수를 아는 지식)안에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를 얼굴로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은 믿음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들의 모든 것은 분토와 같이 버리고--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부분적으로 행하던 은사의 지체 역사는 폐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의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안에서 장성한 자의 믿음과 사역을 감당합시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지체가 아닌, 참 형상 곧 머리를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