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구 7

 

121)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마24:19)


세상 끝 날에 화 받을 자들로서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이 누구인가? 육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는 비유의 말씀으로서 아이 벤 자들은 말씀을 받고 믿음이 있다 하면서 성령의 열매가 없는 자들이다.


또한 젖먹이는 자들은 세상의 초등학문 곧 율법의 말씀인 사람의 교훈으로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다. 아이 벤 자들은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젖먹이는 자들은 이제 단단한 식물인 십자가의 도를 전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악을 분별하며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22)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 것"은 무엇인가?(요6:58)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먹고도 죽은 양식은 무엇인가? 이는 모세를 통한 율법의 말씀으로서, 그들은 믿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모세까지도 멀리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았을 뿐 들어가지를 못했다.


이는 신약의 이 시대에도 율법의 말씀 곧 세상적인 교훈의 말씀에 집착하게 되면 결과는 죽음뿐이다. 십자가의 도 안에서 영을 분별하여 율법의 말씀 안에서 벗어나자.



123) 생명에 이르는 영혼의 양식은?(요4:32)


육신이 먹어야 할 양식이 있고, 영혼이 먹어야 할 양식이 있다. 육신의 죽음은 유한한 것이나, 영혼은 생사에 상관없이 무한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우리들에게 주시는데, 이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다.


세상에 속한 율법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영혼은 선악을 분별하나 결국은 죄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영혼은 십자가의 도 곧 진리의 말씀 안에서 중생하여 영생에 이르게 된다.


십자가의 도는 영생에 이르는 영혼의 양식이다.



124) "갈릴리로 가라"의 뜻은?(마28:10)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빨리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듣고 보고 안다고 자고자만한 자들에게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알지 못하도록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눈은 감기시고 대신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갈릴리의 죄와 사망의 자리에 앉아 있음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나타 내시여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다.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여 자신의 심령에 죄의 세력들을 바로 보고 고침을 받는 자가 되자. 죄와 사망의 역사가 넘실되는 영혼의 바다에 보혜사 와 함께 하자.



125) "권세 있는 새 교훈"이란?(막1:27)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좇아내는 역사는 "귀신아 물러가라"고 한다고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귀신을 좇아낼 수 있는 권세 있는 새 교훈이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곧 진리의 성령 보혜사께서 역사 하시는 새 언약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이다.


죽으심으로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예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을 때에 귀신은 물러가고 오직 예수님만이 함께 하시여 평안을 주시리라. 귀신을 좇는 권세 있는 새 교훈은 이 세상의 교훈이 아니다.


하늘의 권능이 아니고는 결코 귀신은 물러가지 않는다. 권능 곧 권세와 능력은 하늘에 권세와 능력으로서, 이는 십자가의 도를 아는 것과 본받아 행하고자 하는 자에게 능력을 입혀 주신다. 새 교훈 새 언약인 십자가의 도를 마음에 받으라.



126) "많은 의원"은 누구인가?(막5;26)


의원은 병든 자들을 고쳐 주는 자다. 그러나 본문의 많은 의원들은 병을 고쳐 주지를 못했다. 세상의 모든 의원들이 다함께 고치고자 할지라도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 마음의 병이다.


그래서 육체의 병은 고칠지라도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마음의 안정은 환자에게 부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을 그대로 나두고 육체의 병을 고침 받는다 할지라도 진정한 평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의 교회에 마음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를 구하고 있으나, 많은 의원(율법의 종들)들이 고치지 못하고 있다. 심령에 병든 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고침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 곧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할 때에 병의 근원을 치료해 주시고 건강하게 하시는 것이다.



127) "혈루의 근원이 곧 마르매"의 뜻은?


혈루병은 피를 많이 흘리는 병이다. 피는 생명과 같은 것으로, 이 시대에는 열심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몸과 마음 목숨을 다해 충성하며 열심을 내고 있으나, 그 열심히 참 하나님에게 라면 좋겠으나, 세상의 것(세상 임금)을 위한 것이라면 그 피 흘림은 헛된 것이다.


이 땅에 속한 율법의 말씀 안에서 온전해 지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해서 근원적인 원인을 고침을 받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은 세상의 것을 좇아가면서도 율법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피를 흘리는가? 참 하나님을 위한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곧 천국 복음을 위한 피 흘림이 아니라면, 먼저 자신이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를 바로 보고 그 근원을 고침 받아야 할 것이다.


마음의 병을 건강하게 고침 받는 것은 십자가의 도 안에서 은혜를 받고 옛 구습을 버리며 잘못된 습관들을 믿음 안에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마르매는 끊어져야 하고 피 흘리게 하는 잘못된 것들을 버려야 함을 말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을 위해 피 흘리는가?



128) 성경 말씀의 "개 나 돼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마(7:6)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거룩한 것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말씀을 말하며,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을 핍박하는 자들은 율법의 말씀 안에 있는 자들이다.


개는 짖어 도둑을 지키는 것이 임무이다. 우리들은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자 곧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면, 주의 종으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자이다.


사56:10에 짖지 못하는 개를 "벙어리 개"라고 함은 주의 종들로서 목사들이 아니겠는가? 진리의 말씀 곧 십자가의도를 전하지 못하고 이 땅에 속한 물질 명예 권세 또한 윤리 도덕적인 사람의 교훈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땅에 속한 자들로서 지금까지 비밀로 감추어져 왔던 십자가의 도 비밀의 말씀을 핍박하게 된다.


또한 돼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짓밟는 것이 일이다. 이 땅에 개와 돼지가 누구이겠는가? 나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지를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129) 예수님께서 무엇을 보여 주시는가?(막10:51)


소경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요17:24) 하나님께서 영광을 예수님에게 주신 것은 창세전부터 예비하신 것으로 곧 십자가의 도이다. 십자가의 도를 믿음 안에서 보고(알고) 믿는 자는 구원의 약속을 받고 보증으로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엡1:13)


보혜사께서 우리들 심령에 오시면, 빛의 말씀으로 비추시고 모든 어두움들을 들어내어 보게 하시고, 다시는 죄의 세력들에게 미혹 받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 빛의 열매는 먼저 마음에서 이루어지고 다음에 육체의 몸을 통해서 풍기게 된다.(엡5:8-14)



130)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의 뜻은?(막16:18)


이는 자연계의 뱀을 손으로 만지고 뱀의 독을 마신다는 그런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먼저는 뱀이 무엇을 상징한 말씀인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용=뱀= 마귀=사단(계12:9) 이며 , 이는 첫 사람 아담을 상징하는 이름들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입게 되면, 율법의 말씀을 접한다(집으며) 할지라도 또한 율법의 말씀 안에서 독(시험)을 마실지라도(당한다), 보혜사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해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야 함을 행1:8에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세상 임금(뱀)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요14:30-31참조)



131)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늘에 기쁜 소식(십자가의 도=그리스도)을 준 것은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 그대로 마리아의 몸에 아들 예수를 잉태하게 됐고 예수의 열매를 이 땅에 낳으셨다.


이와 같이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씨 곧 진리의 성령 보혜사(하나님의 씨)를 마음에 잉태케 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예수의 열매 곧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132)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의 뜻은?(눅9:60)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장례에 있어서 그들의 장례에 참여하지 말라는 그런 뜻의 말씀이 아니다. 문자적으로는 그렇게 알기 쉬우나,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비밀을 십자가의 도 안에 숨겨 두신 것이다.


먼저 죽은 자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죽은 자는 율법의 주관자인 첫 사람 아담이고, 아담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은 죽은 자이다. 이들을 장사함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함으로 청지기(죽은 자=율법의 종들) 아래서, 율법의 정죄로 회개의 역사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혜사를 믿음으로 아들이 된 자는 오직 하늘에 속한 예수님만을 좇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혜사로 말미암는 계시의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의 믿음에 있는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133) "나로 먼저 가족을 작별케 허락--


"신앙생활에 있어 어려움은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한 영의 분별이 필요하고, 또한 혈육의 가족에 대한 정(情)이다. 세상에서 사람 간에 있어 잘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정이 필요한 것이지, 결코 인간의 정 안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정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잘못하면 한(恨)으로 남게 되고 원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랑보다도 먼저 가족 간에 정에 의한 작별을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안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심과 같은 것이다.


134)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의 뜻은?(눅11:44)


평토장한 무덤은 봉분이 없는 무덤으로서, 무덤인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대로 밟고 다니게 된다. "너희는"의 뜻은 하나님을 믿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상대로 말씀하심은 오늘날에 있어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의 육체는 무덤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인격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더러움이 나오고 율법의 결과는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세상의 물질 명예 권세를 숭배하며 달려가는 자들! 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자이다.


이제 평토장한 무덤 곧 그 육체에 약속하신 보혜사를 영접하여 거룩한 성전으로 거듭나야 한다.



135) 공의의 하나님이란?(요7:49)


이 땅에 율법 안에서는 공의가 없다. 모든 판단이 사람의 지혜로 말미암아 율법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가불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꼭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보면 너무도 공평치 않음을 보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조롱과 핍박이 있지만, 우리들이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 맏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22:10-12에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살후1:6-7에는 "너희로 환란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란으로 갚으시고, 환란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136)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라(계22:13)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과 끝이다. 처음과 나중이다. 또한 알파와 오메가이다. 이는 같은 뜻으로서 처음은 첫 사람 아담을 의미하고 나중은 마지막 아담 예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 곧 창조와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두 그릇 곧 아담과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리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첫 사람 아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심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천국 역사에 대해서 알지를 못하고 있다. (고전15:44-49참조)



137)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의 뜻은?(딤전3:6)


예수의 이름으로"마귀야 물러가라 ,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치는 자들은 깨달을진저! 그들은 마귀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천사가 타락한 마귀를 교리로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 마귀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하는가?


히2:14에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가 마귀라 하였는데, 고전15:21에는 사망은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였으니,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는 사람 곧  첫 사람 아담임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어서 오늘날까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원망함은 합당한가? 하나님께서 세상 임금으로 세운 통치자를 정죄하는 자들의 정죄가 어디로 가겠는가?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지 말라! 예수님은 오직 사랑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을 위한다고 정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주의 종들이 자기의 옳은 생각으로 형제들을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정죄하는 것은 스스로가 사단의 진노 아래 있는 종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사랑을 바로 알고 사랑 안에 거하라!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138)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의 법은 무슨 법인가?(딤후2:5)


세상에서도 질서를 위해 세상의 법이 있고, 법을 지키는 자에게 상을 주고 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벌을 준다. 천국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에 가기를 원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생명의 법 곧 십자가의 도를 지켜 행하는 자라야 한다.


율법의 말씀과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라. 그리고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약속의 성령이신 보혜사를 영접하고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법으로 따르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감은 열심만 가지고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인 십자가의 도 안에서 믿음과 열심(준행)으로 들어가리라.



139)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마11:27)


아들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아들 예수를 알고 참 하나님을 바로 알아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따를 때에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세상의 것으로 마음에 가득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한 자들!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계시를 받기를 원하신다. 이는 모두에게 비밀로 감추어 두신 비밀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자 함이다. 계시란? "열어 보여 준다"는 뜻으로 주의 종들이 열어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비밀의 말씀을 감추어 두신 예수님 자신이 열어 보여 주시는 것이다.


계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보혜사께서 열어 보여 주시는 것이다. 아들 예수님의 소원은 각 심령에 보혜사를 보내 주시고 성전으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고자 함이다.


이 글을 읽는 형제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않겠는가? 먼저 예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보혜사로 말미암는 계시의 믿음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140)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마11:28)


이 땅에 모든 인생은 세상의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가운데 헛수고를 하고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있다. 물질적인 탐심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심령에서부터 짓눌리는 무거운 죄의 짐은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 보다 재물을 사랑하여 모두가 죄의 짐을 지고 있다. 세상 것을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죄의 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죄의 짐은 육신의 소욕 가운데서는 결코 벗어 던질 수가 없다. 율법의 멍에는 결과가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멍에는 결과가 영생이기 때문에 자유와 기쁨이 함께하며 마음은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지신 예수님!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 가운데서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안에 들어 갈 때에 마음이 가벼워짐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