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구 6

 

 

101) 진리가 무엇이냐?(요18:38)


진리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말씀으로서 변하지 않는 말씀이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얼마나 변하는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사명은 "진리에 대해증거"하러 오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어 주시고 부활하시고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알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변개치 아니 하심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심판의 역사 곧 이 세상을 통한 천국의 역사하심이 십자가의 도 안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체험하고 확신하며 증거 하는 모든 역사가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두 그릇인 아담(선악나무)과 예수(생명나무)로 말미암아 역사되고 또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이 십자가의 도 곧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지라도 지금까지 아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같지 못했다.


예수께서 이루어 주신 진리의 말씀 곧 십자가의 도를 본받아 순종함으로 진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떠나서는 하늘의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없다.



102) 예수의 사랑이란?(롬5;8, 고전13장)


예수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롬5:8)하셨다.


십자가의 도 곧 예수님의 사랑은 육신적인 물질적인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영적인 것이다. 이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기쁨과 평안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먼저 우리들 각 심령에 믿음으로 나타나는 바, 예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로 말미암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은 고전13장에 "오래 참고----견디느니라"의 인내의 말씀으로서 구원에 대한 확신 속에서 주어지는 인내의 사랑이다. 고난에 참음이 없는 사랑은 육신적인 것이고, 주님의 사랑은 한 영혼을 귀히 여기어 오늘도 기다리시고 견디는 사랑이시다.


십자가의 도는 천국 복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이다. 마음에 영접하여 믿음으로 본받아 순종하자.



103) 자기 부인을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이 세상에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주님의 뒤를 따라 가고자 하는 자들이다.(눅9:23)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항상 함께 할 것을 다짐하고 다짐을 했지만, 고난 받는 예수님을 앞에 놓고는 세 번을 부인한 사실은 무엇을 교훈하는가?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부인할 수밖에 없다.


육체의 죽음의 두려움 앞에 누가 예수를 시인하겠는가? 죽음 앞에도 예수를 구세주로 시인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전능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여 함께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믿음은 육체 죽음의 끝은 영혼의 천국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천국 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기를 원하는가? 천국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는 자기를 부인하고 다음은 자기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때에 천국에 가지 않겠는가!(눅9:23)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십자가의 도)을 바로 보고, 자신의 인격을 바로 보고, 죄 가운데 갇혀 있는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자에게 가능한 것이다.



104) 생명의 좁은 문(마7:13)


생명의 좁은 문은 협착하다고 했는데, 이는 알고도 들어가기가 어려움을 말씀한다. 오늘 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모두가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데 안타까움이 있다. 생명의 문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십자가의 도이다. 이는 구원의 도리이며 구원의 문이다. 그런데 왜 생명의 문은 좁고 협착한가? 육의 소욕을 좇아 살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이 택함을 입어서, 하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함이 어렵고 또한 십자가의 도를 본받음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한 믿음이 아니고는 결코 어느 누구도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없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이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라. 보혜사께서 함께 하셔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죽음을 각오한 그대의 믿음에 부활의 역사가 있으리라.



105) 사망의 넓은 문(마7:13)


사망의 역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다. 예수 안에 청함을 받은 자가 있고 택함을 입은 자가 있는데, 청함을 받은 자 곧 예수의 이름만 부르고 있는 자는 아직 사망의 넓은 문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망의 역사는 율법의 말씀 안에서 세상 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세상의 물질 명예 권세를 위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역사된다.


사망의 넓은 문으로 가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에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보내 주시고 아들로 택하시는 것이다.


사망의 넓은 문은 예수 안에서 아직도 세상적인 믿음 곧 율법의 말씀 안에 있는 자들이다. 진리인 십자가의 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세상에 속한 믿음에서 하늘에 속한 믿음으로 변화를 받자.



106) 구제란?(마6:3)


구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를 도와주는 일이다. 이는 육신적인 물질적인 구제로서 이 사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육신적인 물질적인 구제에 앞서서 이제는 영적인 영혼의 구제를 알아야 한다.


영적인 구제란? 예수를 믿는 형제들이 아직도 죄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며 갇혀 있는 자들 곧 그들의 영혼을 진리 안으로 인도함이 영적 구제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를 전함은 천국 백성으로 구제하는 일이다.


영적인 구제를 하는 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보혜사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구제를 은밀히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육신적인 물질적인 구제는 주님의 사랑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의 이름 곧 십자가의 도 안에서 영적인 물질적인 구제를 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을 돌리자.



107) 금식이란?(마6:16)


금식은 음식을 끊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과 질병과 모든 어려움이 있을 때에 금식은 유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금식을 알아야 하는바, 세상에 속했던 우리들이 예수 안에 부르심 받고 난 후에 여전히 세상에 것으로 마음에 무역하게 되면 그 믿음은 세상에 속한 믿음이지 하늘에 속한 믿음이 아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구원의 도리 곧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믿음으로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마음에서부터 세상의 것들은 금식을 해야 한다. 이는 세상의 것을 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우선 보혜사로부터 능력을 입기 까지는 간절한 마음으로 보혜사께 순종해야 한다.


십자가의 도 안에서 아무리 큰 사랑의 은혜를 입은 자라도 권능(권세와 능력)을 입기 까지는 세상의 것(율법의 교훈)은 금식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108) 임마누엘 신앙은?


마(1:23)에, 임마누엘 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으로서, 이는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시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제시하며,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알 수 있음을 성경의 말씀은 교훈한다.


우리들의 심령에 약속의 성령이신 보혜사를 영접케 하시고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셔서 어떠한 경우든지 항상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신다. 임마누엘 신앙은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보혜사)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109) "믿음은 구원" 무엇을 믿을 것인가?


모든 사람은 믿는 대상이 있다. 우리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 안에 있다. 이 땅에 예수를 믿는 자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 자는 많지 않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롬10:17) 예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고 막연히 믿는 믿음은 사람의 미혹에 빠지기가 쉽다.(마24:4)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과 예수와 보혜사로 이어지는 삼위로 역사를 하시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 곧 십자가의 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예수를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롬5:8) 이제 예수를 믿는 믿음은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고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10) 주의 도와 하나님의 도는 다른가?(행18:25-26)


주의 도는 세례 요한을 통한 회개시키는 물세례의 말씀 곧 율법의 말씀을 말하고, 하나님의 도는 예수님을 통한 성령 세례의 말씀 곧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를 말한다. 율법의 말씀은 이 땅에 속한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은 하늘에 속한 말씀이다.


전자는 사람을 통한 역사이고, 후자는 오직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통한 역사이다. 전자는 예수의 이름을 믿으나 모든 일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고, 후자는 나를 부인할 때에 보혜사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111) 요한의 물세례란?


물세례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한다. 물세례란 회개의 역사를 이루는 교훈(세상의 교훈인 율법의 말씀)을 받고 자신의 죄(외적)를 회개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는 주의 종들을 통해서 역사한다. 그러나 이때에는 근본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회개의 역사를 거듭 거듭하게 된다.


이는 마음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가고자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육신적인 회개가 아닌, 근본적인 영혼의 영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회개는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할 때만이 가능하다.



112) 예수님의 성령세례는?


물세례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되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나,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사람을 통한 역사가 아니고 오직 약속의 성령이신 보혜사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되며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역사이다. 이는 각자의 심령에서 역사하시되 십자가의 도 안에서 사랑의 은혜로 충만케 하신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


물세례는 선하신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고, 성령 세례는 마음에 보혜사를 영접하여 동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 고침을 받아 거듭나서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113) 약속의 말씀이란(롬9:9, 갈3:1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은 때를 따라서 다르지만, 십자가의 도 안에서 약속을 주시는 바, 먼저는 율법의 말씀을 주시고 선악을 분별케 하시며 다음에 때가되면 진리의 말씀을 주신다.


율법이나 진리나 말씀을 지키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율법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다. 그래서 구약적인 율법의 믿음에서는 순교로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던 것이다. 율법의 믿음에서는 구원이 어렵기 때문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죽으심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곧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고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를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약속의 성령이신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약속한데로 우리들 심령에 보내 주시는 것이다. 그 증거로 십자가의 도 말씀이 우리들과 함께 하고 본받는 믿음 안에서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 십자가의 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구원의 약속을 받고 믿음으로 나아가자.



114) 약속의 자녀란?(롬9:8)


예수 안에 부름을 받았다고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표적이 있는 것이다. 표적은 외적인 것이 아니고 내적인 심령 안에서 이루어지고 확증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영 곧 보혜사께서 함께 하심이 곧 표적인 것이다.(요일3:9)


십자가의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는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보혜사를 마음에 영접하는 길은 십자가의 도를 마음으로 믿어 순종하는데 있다.



115)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란?(롬11:17)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돌 감람나무에 속한 자들로서 이는 율법의 주관자인 첫 사람 아담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참 감람나무는 사랑의 예수님을 상징한다.


첫 사람 아담의 율법 안에서 태어나고 복 받고 또한 율법의 사망의 권세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혈의 피를 흘려주시고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곧 구원의 도리를 통해서 믿는 자마다 돌 감람나무에서 벗어나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된다.


이는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보혜사 곧 양자의 영을 받아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돌 감람나무에 속한 진노의 자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노의 자녀에서 사랑의 자녀로 변화 받은 것을 항상 감사해야 한다.


116) 피 뿌린 옷이란?(계19:13)


피 뿌린 옷이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성경의 말씀은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백마와 탄자는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함께하는 성도들로서 진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진리의 군사들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가진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의 말씀 곧 보혈의 피 공로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도를 각 심령에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죽으심으로 인한 보혈의 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요 영생에 이르는 생명의 말씀이다. 이들은 보혈의 피로 말미암는 영적인 피 뿌린 옷을 입혀 주신다.


피 뿌린 옷을 입지 못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가 없다. 십자가의 도 안에서 피 뿌린 옷을 입어 진리의 인격으로 변화를 받자. 진실한 자는 세상을 이기리라.



117)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의 뜻은?(마24:4)


세상에서 생각하는 식의 주위 사람들의 거짓말이나 간사한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이는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세를 맞아 분별하며,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름 준비하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는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다. 거짓 선지자들이란 진리가 아닌 율법의 교훈으로 곧 사람의 교훈을 가지고 생명의 말씀인체 전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의 율법의 말씀을 의지해서 전하는 자들이다.(물론 이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지라도 진리의 믿음이 없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주관자가 첫 사람 아담임을 알지 못하는 자는 사람의 미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는 첫 사람 아담의 지혜로 말미암는 세상 교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십자가의 도 안에서 영을 분별하게 되면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게 된다.



118) 영원한 복음이란?(계14:6)


영원한 복된 음성은 사람의 음성이 아니다. 영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린 자에게 들려지는 새미한 주님의 음성이다. 이는 아들들에게 들려주시는 사랑의 음성이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준행하라는 주님의 음성 곧 명령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영혼을 구원하시는 말씀은 십자가의 도뿐이다. 이는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다시 예언해야 할 영원한 복음이다.(계10:10-11)



119) 다시 예언(계10:11)의 말씀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기독교 안에 주신 복음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 복음을 곧 외적인 복음을 주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형제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자신들은 진리 안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진리 안에 있는 자들은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영접하여 보혜사와 동행하는 자들뿐이고, 영접하지 못한 자들은 비록 아들이라도 아직 율법의 청지기 아래서 양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갈4:1-6)


바로 이들에게 예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세상의 복음이 전해지고 세상의 복을 많이 받은 한국 교회에 다시 예언해야 할 복음은 천국 복음으로서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예언해야 한다.


이는 영적인 것으로 각자의 심령 안에서 이루어지는바, 이제는 마음에 보혜사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 우리를 부르시든지 준비하는 자들이 되자. 십자가의도 안에서---



120) 요나의 표적이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하심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지만, 예수님의 본래의 목적은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시고자 함이 아니고, 영혼의 병 곧 마음의 병을 고쳐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함이다. 육체의 병자들을 고쳐 주심은 본래의 목적인 영혼의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하시는 상징 예표이다.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심 같이, 마음의 모든 병도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이루어 주신 십자가의 도 안에서 진리의 성령 보혜사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게 된다. 지금은 물질의 복을 위해서 예수를 믿을 때는 지나가고, 영혼의 병을 고침 받고 심령에 하늘의 복을 받아야 할 때이다.


십자가의 도 곧 그리스도께서 각 심령에 있음은 구원의 예수를 만난 표적이다.(눅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