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아오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하고 임금으로부터 대제사장과 장노 서기관 모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에 가서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당시의 잡혀온 장년들은 연로하여 거의 다 죽고 잡혀올 당시 소년들과 또는 2세들이 자라서 조상들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던 간구의 기도를 계승하여 몸부림치며 간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70년이 차기까지는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 받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상 역사적으로 있었던 바벨론 왕은 곧 사탄의 모형인 율법의 권세를 잡은 자이었다. 본 바벨론 왕과 계시록에 있는 바벨론 왕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신령적 비밀이 있는 것이다.

바벨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비밀이라는 것이다( 계 17 : 5 ). 그리고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기에서 나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밀을 아는 지식을 받은 성도들은 생명의 길로 들어갈 수 있고,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신자는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비밀이므로 이 비밀을 본서에 공개하는 동시에 주님께서 주의 백성을 부르시는 음성을 공포하는 것이다.

계시록 17장, 18장을 대체적으로 해석하면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이는 현대 교회가 지금까지 물세례만 받고 죄에 대한 회개의 터만 거듭 닦고 있는데 이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물세례이므로 율법의 권세 잡은 세상 신 곧 바벨론 왕에게 속한 교회를 음녀라 또는 큰 바벨론이라 명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모세로 말미암아 율법을 주신 후 약 1500녀 후에 약속하신 진리 곧 예수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에게 율법이 없는 순수한 진리의 복음만 보내 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은혜가 없이는 죄를 회개할 수도 없고 구원의 도리 곧 십자가의 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율법적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모든 신도가 집단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개인의 구원인 것이다.

현대 교회가 율법 시대가 아니고 복음 시대라고 하며 성경 말씀을 간혹 오해를 하는 점이 있는데 ( 갈 4 : 1 )에 보면 복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믿음이 어려서는 하나님의 종 곧 율법의 주관자 아래에서 종과 다름이 없이 한 때를 지낸 후에야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 곧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인쳐 택하시는 것이다.

택함을 받지 못하고 부름만 받은 믿음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큰 소리쳐 보았자 세상의 썩을 것이나 받고 각양 은사는 받았을지라도 그 은사를 주신 주인은 모시지 못한 신자를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를 바벨론 음녀라 칭하며, 음행이라 함은 율법의 권세 잡은 사단이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 노릇을 하면서 예수의 피 값으로 구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율법의 권세로 사로잡아 억압하고 하나님께로 보내지 않는 것이다( 사 14 : 17 ).

갈 (3 : 23) :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처음 믿는 자와 세상적으로 믿는 자는 일단 영적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회개의 기한이 차면 진리 계시의 믿음 안에서 자유함을 받는 것이다.

각양 은사와 진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방언도 예언도 폐하는 은사는 마치 물고기 낚는 낚시 미끼와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은사 받은 것으로 자고하고 자랑하고 교만하여 진리를 받은 줄로 오인하고 그대로 있으면 그 믿음은 천사 숭배하는 종의 신앙으로 천국의 기업을 받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은사의 머리가 되시는 진리를 받아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므로 바벨론에서 나아오라 함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골 2 : 16 ).

주님의 종들 중에도 혹은 율법의 진노권을 주님께서 행사하시는 것으로 잘못알고 정죄권을 함부로 행사하고 있지만 진노권은 사단이 행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맞을 채찍을 주님이 대신 맞고 우리의 죄와 죽음을 주님이 담당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은 죄는 얼마든지 사해만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한 믿음 안에서 바로 두려움의 왕 율법의 권세 잡은 자가 사단이라는 것을 알고 속히 주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죄의 권세를 두려워 할 염려가 없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 과거 현재 미래의 죄 전부를 대속 사죄하여 주신 은혜를 확실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의 사망 권세 잡은 자와 상관이 없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 안에서만이 죄를 또 다시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그 안에서 속히 떠나서 주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죄의 종노릇을 못 면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피로된 형제를 함부로 참소하며 정죄하고 심지어는 마귀의 새끼라고 저주하는 주의 종들 또는 형제들이 간혹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바로 사단의 종들이 행사하는 것이다.

마귀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진리가 있는 사람이고, 마귀는 진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마귀를 이상하게 알거나 두려워 할 것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요 8 : 44 ).

본서에서 전반적으로 마귀의 정체를 거듭 명시함은 예수는 진리의 생명의 왕이요, 사단 곧 아담은 계명의 진노 곧 사망의 왕으로서 이 두 왕으로 말미암아 대속의 십자가가 이루워진 것을 밝히는 것이다.

마귀의 인격 정체를 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참 하나님의 참 예수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참람한 이름 곧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 노릇도 하고 예수님 노릇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후 2 : 4, 겔 28 : 2 ).

바벨론에서 나오는 길은 오직 계시의 믿음 한 길 밖에 없은즉 율법의 종의 믿음에서 급속히 떠나와야 한다.

주의 종들 가운데서 혹자는 바벨론에서 나아오라고 외치면서 남의 우리의 양을 미혹하여 자기의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은 현재 교회에서 탈출해 나오라는 말씀이 아니고 율법의 종의 믿음에서 진리의 아들의 믿음으로 나아오라는 말씀인 것이다.

현대 바벨론 교회에 대한 심판이 임박한바 내적 외적 두 가지가 있는데 영적 심판은 계시의 말씀 곧 본서의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육적 심판은 무도한 짐승의 손으로 말미암은 멸망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계 17 : 18 참조 ).

바벨론을 우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진리의 생명이 없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는데 이는 사망의 권세 곧 윤리 도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고 하면서 세상의 사람들을 속이어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이를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본서의 말씀을 올바로 보는 성도는 바벨론에서 즉시 나아올 수가 있을 것이다. 바벨론에서 나아오라함은 세상적인 믿음, 소망, 사랑을 다 천국으로 옮겨 놓고 온전한 천국적 믿음을 소유하라는 뜻이다.

천국의 문은 좁은 문이므로 세상의 것으로 살찐 몸은 통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 7 : 14 ).

현대 기독교 지도자는 권세의 신을 섬기고, 신도들은 금 신을 섬기는 신앙을 총칭 세속화라고 하는 것이다.

단 (3 : 7) :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니라"

이는 말세 교회를 예표한 모형인즉 금(金)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