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악과의 비밀 계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본래 선악을 알게 지었을까? 모르게 지었을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정확한 대답은, 보통 많은 사람은 선악을 알도록 지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인은 모르게 지었다고 대답한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안 따먹었더라면 불순종의 죄를 짓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과를 따먹은 후에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은즉, 만일 실과를 먹지 않았더라면 선악을 모르는 짐승과 같이 되지 아니하였을까? 또 그렇다면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아니한 일반 동물들은 왜 죽어야 하는가?

또 사람이 선악과를 안 따먹었다면 선을 행하고 영생의 도리( 대속의 도리 )를 받지 못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엡 1 : 4-5 ). 그러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계명의 법을 상징한 것이다.

( 히 7 : 16 )에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아담의 마음에 새겨 내성의 인격으로 받은 것이다. 선악을 알 수 있는 지능은 오직 율법의 성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롬(2 : 14-15) :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7 : 7)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에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그 원인은 마음에 새긴 계명의 법으로 말미암아 선악을 알고 또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받은 것이므로 한 인격 안에서 선과를 맺을 수도 있고 악과를 맺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자가 먼저 꾀임을 받았다 함은 하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욕구심으로 말미암아 결과를 실지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 창 3 : 6 )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라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곧 아담을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따먹은 과실은 영혼이 탐하는 과실이다. 여자가 남자의 육체를 분양해 받았으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육체적 심령으로 맺히는 결과 곧 선악과를 다 먹은 것이다.

골(2 : 20-21) :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창 (3 : 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너희가 죽으라 하노라"

사람 안에 있는 양심의 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결과는 정죄와 사망이므로 그 결과를 먹지 말라. 그러나 아담 안에 있는 인격 자체가 계명의 율법 곧 선악과이기에 그 자신의 결과를 아니 먹을 수 없이 필연적으로 먹게 되는 것이다. 즉 계명의 율법의 결과는 죄와 사망이므로 아담 자신의 사망권세로 자신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예정의 섭리이시다( 히 9 : 27 ).

결론적으로 선악과는 곧 계명의 법이다.

시 (19 : 8) :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롬 (7 : 7) :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롬(2 : 14-15) :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

이 계명이 마음 안에 있으니 즉, 내성적 지성적 인격이므로 아니 먹을래야 안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실과를 먹은 후에 ( 율법을 안 후에 ) 비로소 선악을 아는 인격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악과(율법)를 먹으면 정녕 죽게 되는가?

고전(15 : 56) :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는 아담 안에 있는 계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권능이므로 주금은 필연적으로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