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리는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가?

 

소경의 원함은 보는 것이다.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보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 안에서 소경이 누구인가?

벧후(1:8-9)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와 의의 열매가 없는 자! 바로 이들은 소경과 같아서 가까이 있는 것 만을 위해 일하고, 멀리 내다 보고 소망 가운데에서 언제든지 주께서 쓰시고자 할 때를 대비하여 자신을 깨끗케 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잊고 사는 자들이다.

성경의 말씀은 육신의 소경을 말함이 아니고,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하고 있다. 영의 눈(영안) 곧 마음의 눈이 열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예수 만이 나를 구원할 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온전히 의지하고 맡기는 결단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눈은 신령하신 자 곧 보혜사께서 열어 보게 하시는 것이다.

영안이 열리면 무엇을 보게 되는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어 주시므로 주님의 피를 받은 자가 누구인가?를 밝혀 주셨는데, 바로 세상임금이요, 마귀, 사단이라고 하는 땅의 아비를 깨달아 알게 해주셨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그 원인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알게 하시고, 누가 우리를 억압하고 두렵게하고 죄의 종노릇하게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때서야 우리는 나(人)라는 자신을 알게 되고 ,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고 오직 하늘에 속한 예수의 신앙으로 변화 받게 된다.(고후4:1-6참조)

주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오셔서 무엇을 보게해 주시는가? 내 안에서 역사하는 어두움의 역사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남의 허물을 보는데 빠르지만, 보혜사로 말미암는 영안이 열리면 은혜 가운데에 있게 되고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며 고침 받기에 바쁘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역사가 은밀하게 역사 하였으나, 십자가의 도 안에서 보혜사로 말미암아 빛 앞에 드러남(어두움)을 보고(알게됨)--결단하여--고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온전한 회개의 완성이다.

엡(5:12-13)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 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주님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시고자 하는데, 보혈의 공로(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지 못하여, 성전된 자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함은 거룩해야 할 마음 보좌에 보혜사가 계시지를 않고 멸망의 가증한 것(들보=율법=죄의 기원)이 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멸망시키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는 자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면에 있어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 맡기고 의지하고 순종하여 온전히 이 세상을 이길수가 있다.

고전(9:25-27)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은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